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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인간과 인공물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

  • danchu 2011-02-18 21:16:46 조회 6,802 추천 1092
Science On에 연재된 것으로 인간과 인공물의 상호작용에 대한 글입니다.
인지과학을 처음 접했던 시절 튜링 테스트와 중국어 방을 주제로 친구들과 이야기 꽃을 피웠지요.
이 글을 읽으면서 중국어 방과 그 방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을 '너'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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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인간과 인공물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
BY 이정모 2011.02.07
http://scienceon.hani.co.kr/archives/15319

생활이 복잡해질까봐, 사생활이 침해될까봐 염려하며 끈질기게 저항하여 사지 않고 지내려던 스마트폰을 최근에 드디어 사서 사용법을 한창 배우고 있다. 그러면서 여러 기억과 생각들이 떠올랐다.



되돌아보면 45년 전 군에 복무할 때에 이동통신 단말기는 지금의 컴퓨터 두세 개를 합한 크기의 통신기계에 연결된 자석식 전화였으며, 일부 고위 장교나 전문 통신병들이 겨우 사용하던 그런 것이었음이 생각난다.



우리 삶에 침투하는 인공물, 기계들

40년 전인 1970년대 초에 캐나다로 유학 갔을 때 처음 겪은 일도 생각난다. 토론토 공항에 내려 버스를 타고 대학 도시로 가면서 고속도로 근처에서 수많은 ‘자동차 생산 공장’을 보았다. 아니, 자동차 생산 공장이려니 ‘생각’을 했다. 오늘날 같으면 그냥 보통 회사에 일하러 온 일반 직원들이 회사 주차장에다 차를 주차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은 일이지만, 국내에 제대로 자동차를 생산하는 회사가 없었으며 승용차는 소수 부자들이나 타는 것이었던 한국적 현실에 익숙했던 당시의 나에게는, 그 풍경이 일반 회사 출근자들이 모두 차를 몰고 와서 주차해 놓은 모습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남한과 북한의 교류가 처음 시작되어 북한 대표들이 남쪽에 와서 남한 고속도로의 차량 홍수를 보고는 남한 정부가 일부러 보이려고 남한의 모든 차를 고속도로에 징발한 게 아니냐고 물었다는 에피소드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30여년 전 1980년대 초에는 커다란 프레임 컴퓨터가 아닌 국내 최초의 애플 8비트 개인용 컴퓨터(PC)를, 그것도 회사 완제품이 아닌 조립품을, 당시 시가로 200만원 가까운 돈을 주고, 당시에 (용산 전자상가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던 때인지라) 컴퓨터 상가의 메카였던 서울 강남 터미널 상가에서 구입해, 자꾸 고장을 일으키는 그 피시와 씨름을 하느라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일도 생각난다.


20여년 전 1990년대 초에는 도스(DOS) 시스템만 있던 피시 세상에,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 시스템인 윈도 시스템이 애플 회사에 의해 개발돼 처음 나오고, 이 시스템을 뒤이어 도입한 아이비엠(IBM) 피시가 애플 피시 세상에 대적하여 퍼지기 시작하고, 그래서 피시를 애플 제품으로 살까,  아이비엠 제품으로 살까 한참이나 고민했던 시절이 생각난다.


또한 당시 국내 한글 워드프로세서의 주류를 이루던 보석글과 삼성 훈민정음이 단기간에 수익을 올리려는 근시적 식견 때문에 결국은 한글과 컴퓨터 회사를 이룬 젊은이들의 ‘아래하 한글’ 워드프로세서에 왕좌를 내주게 된 일(그런 역사적 사실을 한컴 사이트에서는 볼 수 없다), 아래아 한글 메뉴를 배우려 애쓰던 시절, 국내에서 인터넷 사용이 퍼지기 시작하던 일도 생각난다.


전화번호만(아니면 짧은 메시지만) 일방적으로 받던 무선호출기 ‘삐삐’ 기계를 사용해 호출 신호를 받자마자 전화기로 달려가던 시절, 그리고 1990년대 후반부터 이른바 핸드폰의 사용이 퍼지기 시작하고, 핸드폰을 사들여 쓰면서 생활의 필수품으로 여기게 된 일도 생각난다.


이제 오늘! 나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하며, 이메일을 점검하고, 핸드폰을 켜놓고 문자와 음성 메시지를 확인하고 보낸다. 또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건 인터넷에 들어가 필요한 정보를 보며 많은 일을 처리하는 때가 되었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소셜네트워크인 페이스북을 들락날락거리는 신세가 되었다.


인공물 없이는 나의 삶이 구성될 수 없는 시대


자동차, 컴퓨터, 핸드폰, 인터넷, 소셜네트워크 시스템 등이 50여년 전 대학 입학 때 나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하고 있다. 나라는 사람의 삶의 존재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컴퓨터, 인터넷, 핸드폰 없는 나의 일상을 생각하기도 어렵다.

나의 존재, 삶의 방식, 나 자신을 넘어서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관계의 삶이, 그리고 여러 주제에 대하여 공부하는 방식이 이미 컴퓨터, 핸드폰, 내비게이션 기기 같은 갖가지 하드 인공물에, 그리고 그것들에 심어져 있는 갖가지 소프트웨어 시스템인 소프트 인공물들에 매어 있다. 그 인공물들과 괴리된 채로는, 생각을 하고, 말과 글을 표현하고, 새로운 앎을 추구하고, 사람을 사귀고, 건강 같은 내 삶의 경과를 파악하거나 통제하고 하는 모든 것을 생각할 수 없다. 나의 삶과 인공물을 구분하는 경계가 이미 대폭 허물어져버렸다. 미래 과학자 레이 커즈와일이 이야기하는 ‘인간과 기계의 구별이 사라지는 특이점 시대’ 입구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성큼 들어선 것이다.

그러면서 깨닫는 게 있다. 우리는 제2의 계몽시대, 깨달음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서구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면, 중세 이전의 시대는 모든 인간사와 우주 현상의 원인을 신에게 돌렸다. ‘신’과 ‘인간 및 자연현상’이 이분법으로 구분되고 ‘신’이 중심이었다. 그러다가 르네상스시기를 지나며 ‘인간’이 중심이 되며 자연현상은 기계적 결정론의 작용으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첫 번째 계몽시대, 깨달음의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그러나 그 틀에서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이 만들은 여러 가지 인공물’은 확연히 이분법적으로 경계지어지고 구분되어 왔다.

그런데 21세기 초인 지금, 그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나의 삶, ‘인간’의 삶과 존재의 양식 곳곳에 ‘인공물’이 들어와 있다. 그들의 침투를, 그 작동방식이 나의 삶을 지배하는 방식과 정도를 일상의 삶에서 의식하지 못하는 수준까지. ‘인간 존재 양식’과 ‘인공물의 작동’이 혼합되어 있다.

갑자기 깨닫게 된다. 우리는 지금 제2의 계몽시대, 제2의 깨달음의 시대에 있다는 것을. 더 이상 ‘인간’과 ‘인공물’이 ‘나’와 ‘너’가 아니다. 인간 존재와 인공물이 하나로 뒤엉켜 있는 것이다. 인간 존재 개념이 재구성되어야 한다. 인간과 인공물의 상호작용 중심으로 인간 존재 개념이 재구성되어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에 따라 미래 테크놀로지의 본질에 대한 개념도 변하여야 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이 새로운 ‘인간-인공물’ 개념의 존재의 본질과 그 작동 양식을 다루는 학문 분야는 무엇인가 하고. 거기에서 우리는 인지과학을 마주친다. 인간 마음의 작동 양식, 그리고 인공물-인간 상호작용의 본질을 지난 50여 년 동안 연구해왔고, 인문사회과학과 공학을 융합해 연결하여 미래에 대해 여러 시사점을 던지는 21세기의 기초학문을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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